필자는 한국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역사지에 방문하여 과거의 냄새를 맡는 것은 좋아한다. 역사 지를 방문해보면 재미없는 정치 역사가 아닌 그들의 실제 생활을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편적으로 듣는 이야기도 꽤나 나의 흥미를 자극하곤 한다. 어쩌다 보니 잠시 살게 된 부여에서 방문한 정림사지 5층 석탑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의 거대함
정림사지 5층 석탑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2곳인데, 주차장과 가까운 입구를 폐쇄해놓은 상태라서, 차를 주차하고 한참을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 아마도 매표소가 한 곳에만 있어서 폐쇄를 해놓은 듯한다. 한참을 걸어서 표를 구입하려고 했는데, 사람이 없다. 그런데, 정림사지로 들어가는 입구가 개방되어 있지 않아서, 표를 구매하지 않고 들어갔다. 아마도 주말이라서 사람이 없는 듯했다.
멀리서 보이는 정림사지는 사실 실망스러웠다. 화려해 보이지도 않았고, 특색 있어 보이지 않았다. 학창 시절 백제의 사람들이 탑을 잘 쌓는 기술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려보니,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걸음씩 다가갈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걸음 다가갈 때마다 눈에 띄게 커지는 정림사지 5층 석탑이었다. 바로 앞까지 다가가면 그 크기에 놀라서 압도된다. 탑의 크기가 무려 8m 33cm라고 한다. 이 크기의 탑을 그 시기에 어떻게 지었던 것일까? 그것도 2022년까지 무너지지 않게 말이다.
이탑의 1층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게 무언가 보인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누군가가 낙서를 한 것과 같은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이건 낙서가 맞았다. 백제가 멸망할 때, 당나라 장군인 소정방이 백제를 정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탑에 낙서를 했다는 것이다. 화강암 재질로 만들어졌다는데, 어떻게 낙서를 했는지 모르겠다. 나쁜 놈.
최대한 가까이에서 찍은 후, 집에 와서 해석을 해보려 했으나, 카메라 기능의 한계로 이게 최선이었다. 핸드폰 가메라로는 글씨를 정확히 찍어낼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다음에 좋은 카메라를 구매한 후, 다시 방문하여 사진을 찍어야겠다.
정림사지 5층 석탑 박물관
660년에 멸망할 때, 계백의 한탄이 느껴질 때 즈음 해가 강하게 떠서, 피난할 곳이 필요했다. 바로 박물관으로 향했다. 정림사지를 마주 보고 오른쪽으로 발을 옮기면 박물관 입구가 나온다.
필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관심이 크게 없는 편이다. 흥미로운 이야기 위주의 역사는 좋아하지만, 구체적인 년도를 외우는 식의 주입식 교육에 큰 거부감이 있다. 그래서, 강당 등의 위치를 외우지 않았다. 그냥 모형으로 재현해 놓은 정림사지의 모습이 너무 이쁘다는 생각에 젖어,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무엇보다, 너무 더운 밖의 날씨로 대피한 박물관의 에어컨 바람을 즐기느라, 역사적 지식을 담을 수 없었다.
부여에 방문한다면, 정림사지 5층 석탑을 꼭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가볼 곳이 많지 않은 부여이지만, 정림사지 5층 석탑은 한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